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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무엇을 믿기 어려운가?

종교(宗敎)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종교의 장면에 등장하는 ‘난신난해(難信難解)’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종교를 배우다 보면 수많은 난신난해의 장면이 나옵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옆구리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온갖 기적이 일어나고, 지옥 속에서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종종은 이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오히려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경전에서는 이런 대목에서 믿음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믿음의 장면이라기보다는 표적의 장면이며, 방편의 장면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장면은 뜻밖에도 가장 쉬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도 매우 빠르고 쉽습니다. 다만 믿을 수 없기에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이해도 안 되는 겁니다. 이해에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종교의 경전마다 가장 쉽게 쓰인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까요?     불교와 기독교를 살펴보면 금방 이해의 어려움을 깨닫게 됩니다. 불교에서 난신난해라는 말이 나오는 장면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부처가 될 거라고 수기(受記)를 주는 장면입니다. 다른 어떤 경전보다도 쉬운 말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불성이 있으니 열심히 수행하면 부처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이 믿기지 않는 겁니다. 부처님 같은 분이 아니라 나 같은 게 부처가 될 거라니 믿기지 않는 것이지요. 당연히 이해도 안 됩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께서 주신 기도문을 외우지만, 그 내용을 믿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겁니다. 예수님 정도는 되어야지 어떻게 나같이 수많은 흠결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겠습니까? 입으로는 기도하고 있지만 기도문의 내용을 믿지 못하는 순간이 계속 찾아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면서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믿음의 어려움은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내가 부처가 될 것을 믿는 순간 다음 단계가 곧바로 떠오릅니다. 부처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말한 것은 그다음 단계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음 말을 해야 합니다. ‘너도 그렇다.’ 만약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에서 귀하다는 말은 거짓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너도 그렇다.’라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나만 그렇다는 선언은 깨달음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깨달음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 같은 게 부처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저런 게 부처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건 더 믿기 힘듭니다. 기독교의 복음성가 중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가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노래를 귀엽고, 예쁜 아이들에게 부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노래는 장애가 있거나, 고통스러운 병에 걸리고, 가난에 찌든 사람에게 부를 때 문제가 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불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래의 대상이 지독한 범죄자이면 어떨까요? 저렇게 나쁜 놈도 부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이 드는가요? 믿음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난신난해라는 말은 고통의 표현이 됩니다.   한편 내가 참으로 귀하다는 말, 내가 부처가 될 거라는 말,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맙습니다. 나같이 하찮은 존재가, 수많은 죄를 짓고 사는 내가 귀하다는 말씀에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믿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그 말에 오늘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눈물이 빛이 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천상천하 유아독존 예수님 정도 우리 아버지

2024-03-31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 2

우리가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 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 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는 한 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그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는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 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 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독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에 연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홍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음으로 공기는 홍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 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 주는 온갖 생명과 영기(靈氣)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 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이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 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소중한 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혀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계속)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시애틀 연설문 시애틀 추장 짐승들 나무들 우리 아버지

2022-03-03

[수필] 아버지와 백석의 시

“아버지는 눈 내리는 날   설악산의 품에 안기셨다   종일토록 내리는 함박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백석의 시를 떠올리고 눈 속에 가신   아버지를 추억한다”   1년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대한(大寒)을 하루 앞두고 한국에는 하루 종일 함박눈이 내렸다. 거실 창밖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꽃송이들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굵은 눈과 가루눈이 한데 어울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전후 좌우로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흰옷 입은 작은 천사들이 화려한 군무를 추는 듯 느껴졌다. 많은 눈이 소리 없이 내려와서 세상 소음을 덮어버리고 어지러운 지면을 흰 도화지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버렸다. LA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에 더욱 신비스러웠다. 내가 한국에 머무는 아파트는 산이 둘러 있어서 흰 눈에 덮인 나무들과 숲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멋진 풍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눈이 펑펑 오는 날에는 오래 전에 설악산 눈 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한다.   또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오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중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이 시에는 아름답고 아팠던 시인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백석이 청년 시절 김영한이라는 미모의 기생과 사랑에 빠졌으나 집안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게 되자 위의 시를 지어 주고 떠났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기생은 후에 대원각이라는 고급요정을 운영했는데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감명 받아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서 길상사가 되었다. 그때 대원각은 천억원이 넘었는데 그녀는 “그까짓 천억원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라고 했다. 길상사의 공덕 비 앞에는 위의 시가 새겨 있다.   일제 강점기 천재시인으로 알려진 백석은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으로 동 시대를 살았던  윤동주가 가장 흠모했던 시인이라고 한다. 윤동주는 백석의 첫 시집인 ‘사슴’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그 시집 전체를 직접 필사했다고 전해진다.  백석이 윤동주만큼 우리에게 덜 알려진 것은 그가 일본 유학 후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북쪽에 있는 함흥에서 교사로 있다가 해방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마르고 긴 얼굴에 숱이 많고 약간 곱슬머리인 백석과 우리 아버지의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너무 닮았다. 뿐만 아니라 시에 나오는 내용 중에 우리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눈, 깊은 산, 세상을 피하려는 것’ 등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비교적 큰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다가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사업에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은 후 사업에 전념하지 않으셨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홀로 산에 다니는 것을 즐기셨다. 한국의 산이란 산은 거의 다 다니셨다. 오랜 세월 산행을 하다 보니 거의 등산 전문가 수준에 이르셨다. 그런 아버지가 종내에는 산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67세 되시던 해 12월 말이었다. 며칠씩 소식 없이 산에서 늦으시는 경우가 허다했으므로 가족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연휴를 즐겼다. 그런데 경찰로부터 날벼락 같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변을 당하신 거였다. 설악산 중턱 봉정암 못 미쳐 벼랑 아래서 산에 오르던 마을 주민이 눈 속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벼랑 위에 있는 얼음에 눈이 덮인 것을 모르고 방심하신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2월 30일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설악산으로 떠나셨다. 연휴를 맞아 31일에 관광버스로 몰려든 등산객들이 새해 첫날 대청봉에 올라 해맞이를 할  테니 이들을 피해 하루 전 날인 섣달 그믐에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다. 날짜를 앞당겼을 뿐 아니라 다른 등산객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반대 코스를 잡으셨다. 만약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만 늦게 출발했거나 같은 방향을 택하셨더라면 사고 당시 사람들의 눈에 띄어 생명을 잃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오빠와 두 사위가 버스를 대절해서 밤길을 달려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왔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나도 죽을 뻔 했어”라고 말했다. 그 당시 설악산 가는 길은 좁은 비탈길에 눈마저 쌓여 버스가 다니기에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아버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눈 덮인 설악산의 설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했어. 그 절경을 혼자 만끽하다가 좋아하는 산에서 행복하게 가신 것 같아” 하며 나를 위로했다.     가난한 백석은 눈이 푹푹 내리는 밤 아름다운 연인을 생각하며 홀로 술을 마신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자기들을 외면하는 세상을 피해서 단둘이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들어가서 오두막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환상이다. 임과 함께라면 산골 오두막인들 어떠하리!     나는 오늘 같이 함박눈이 펄펄 날리는 날이면 설악산 등산을 갔다 살아 돌아오지 못하신 아버지가 몹시 그립다.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고 산에 그토록 다니셨던 것은 결국 사악한 세상에 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직 믿을 것은 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산을 안식처로 삼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사심없이 반겨주는 산이 있기에 틈만 나면 달려 가시다가 끝내는 눈 내리는 날 설악산의 품에 안기셨다. 종일토록 내리는 함박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백석의 시를 떠올리고 눈 속에 가신 아버지를 추억한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아버지 백석 우리 아버지 설악산 등산 설악산 중턱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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